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GSG 9 (문단 편집) === 마법의 불꽃 작전 === [include(틀:상세 내용, 설명=납치 직후부터 진압 전까지의, 문서명=루프트한자 181편 납치 사건)] [[독일어]]로는 오페라치온 포이어차우버(Operation Feuerzauber). 이들은 창설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단히 성공적인 대테러작전을 수행했다. [[1977년]] [[10월 13일]] [[마요르카]] 공항을 이륙하여 독일로 향하던 80여명의 승객을 태운 [[루프트한자]] 181편 [[여객기]]([[보잉 737]]-200 '란츠후트(Landshut)호')가 이륙 1시간만에 [[바더 마인호프]]와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과 연합한 괴한들에 의해 납치되었다. 납치된 여객기는 [[아랍에미리트]]를 거쳐 [[남예멘]]으로 향했고 16일 착륙금지를 통보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착륙시켰다.[* 참고로 이때 37세였던 기장 위르겐 슈만(Jürgen Schumann)은 기지를 발휘해 테러범들에 관련된 정보를 당국에 넘겼다. 슈만 기장은 기회가 날 때마다 여러가지 수단을 통해 기내의 상황을 외부로 알리기 위해 애썼고 실제로 슈만 기장의 도움으로 범인의 정확한 숫자 등 요긴한 정보가 제공되었다.] 여러 차례의 이착륙을 끝으로 17일 새벽에[* 모가디슈에 오기 직전 17일 새벽의 착륙지였던 아덴에서 슈만 기장은 기체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기체 밖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받았는데 슈만 기장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한참 후에나 기체로 돌아왔고 이것 때문에 남치범들에게 살해당했다.]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로 향했다. 17일 오전 6시경 모가디슈에 도착하자 비행기의 상태로 인해 이륙이 불가능했다. 테러범들의 리더는 극한 상황에서도 비행기를 잘 조종한 위르겐 피토어(Jürgen Vietor) 부기장에게 비행기를 떠나도 좋다고 했으나 부기장은 거절하고 다른 인질들과 함께 남는 것을 택했다.[* 다만 당시 소말리아는 독재 정권 하였을지언정 현재와 같이 내전의 구렁텅이에 빠진 막장은 아니었다. 물론 한창 [[오가덴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결코 안정적인 곳은 아니었다.] 한편 GSG 9도 피랍 항공기를 추적하여 모가디슈로 향했다. 이들 중 2명은 [[SAS(특수부대)|SAS]] 소속의 어드바이저들로, 당시 개발된 [[섬광탄]]의 --베타 테스트-- 사용을 위해 참가했다. 그리고 테러범들은 사살한 슈만 기장의 시신을 기체 밖으로 던지면서 17일 16시까지 최후통첩이라며 요구사항의 시한을 못박았고 서독 정부는 시간을 끌면서 테러범들로부터 18일 오전 02시 30분까지 시한을 미루는 데 성공했다. 10월 18일 02시 07분 지상 지휘부가 테러범과 연락을 취하는 가운데 소말리아군이 범인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100m 전방에서 화재를 냈다. 테러범들은 화재를 보고 조종실로 몰려들었다. 이 틈을 타 베게너의 인솔하에 GSG 9 대원들은 여객기로 접근했다. 조종석 뒤쪽 출입구와 비행기의 맨 뒤쪽 출입구에 붙여놓은 [[플라스틱 폭약|플라스틱 폭탄]]을 터트렸고 GSG 9 대원들은 뜯겨나간 승강구를 통해[* 원래는 섬광탄 투척 후 돌입할 계획이었으나 작전 전에 훈련을 위해 다른 비행기에서 섬광탄을 사용해 보니 섬광탄이 터진 비행기 바닥이 '''시꺼멓게 그을리고 불똥이 튀는'''걸 보고 실제 작전에서 사용하지 않았다. 비행기 바닥은 승객들의 편안함을 위해 모직물이나 천을 까는데 혹여 여기에 불이라도 붙거나 불이 붙지 않더라도 그을려 연기가 나게되면 구출작전에 매우 큰 위험이 되기 때문이다.] 돌입했다. 작전개시 5분만에 GSG 9 대원들은 범인 모두를 제압하고 승객들을 기체 밖으로 탈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결과는 승객 3명 경상, 범인 3명 사살. 범인 1명은 중상을 입은채 체포되었다. 인질 무사구출의 희소식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전해졌고 GSG 9 대원들은 새로운 우상으로 떠올랐다. 대장인 베게너는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고 GSG 9에 입대하겠다는 지원자도 몇 배로 늘어났다. 특히 이때만 해도 비싸다고 여겨졌던 [[H&K MP5]]는 작전에 동참했던 [[SAS(특수부대)|SAS]]가 그 성능에 주목해서 채택했고 1980년의 [[님로드 작전]], 즉 주영 이란 대사관 진압작전 때 SAS 대원들이 쓰는 모습이 전 세계에 알려진 뒤부터는 방독면, 흑색 전투복과 함께 [[대테러부대]]의 [[필수요소]]가 되었다.[* 1990년대 말엽 이후에는 [[방탄복]]을 입었다거나 [[모가디슈 전투|약을 빨았다]]거나 하는 [[테러리스트]]들이 급증한지라 [[대인저지력]]이 우월한 [[단축형 총기]]에 밀려 입지가 좁아지고 있지만 오랫동안 검증된 신뢰성 하나만 보고 여전히 많은 국가에서 쓰인다. MP5보다 훨씬 위력좋고 쓸만해보이는 총기들이 대거 등장한 2010년대에도 전세계 경찰조직은 오히려 MP5를 '''신규 도입'''까지 했다.] 개발사인 [[H&K]]도 이때를 기점으로 급성장했다. 또 GSG 9의 사복 패션이 대중들에게 강하게 인식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당시 GSG 9은 작전 당시 사복 위에 방탄복을 입는 요원들이 다수였으며 이는 여러 대중 문화나 매체 등지에서 GSG 9이 사복을 입고 활동하는 경찰특공대란 식으로 크게 비춰지게 되는 이유가 된다. 마법의 불꽃 작전이 성공하고 인질들이 구출된 그날 밤 슈탐하임 교도소 1급 보안구역에 수감되어 있었던 [[바더 마인호프]]의 지도자 안드레아스 바더, 얀-카를 라스페가 권총으로 살해되고 구드룬 엔슬린은 교살, 이름가르트 묄러는 칼에 4군데 찔려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서독 정부는 수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모두 '''자살'''이라고 발표했으나 이 사건은 [[독일 연방헌법수호청]]이 후환을 없애기 위해 이들을 살해하고 자살로 위장했다는 음모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당시 바더 마인호프는 독일 경제인연합회장 한스 마틴 슐라이어를 납치한 상태였는데, 이 사건에 보복하기 위해 슐라이어를 살해해 내다버리는 보복 테러가 일어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